일본 자가격리 후 첫 출근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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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1. 11.
작년 12월 그러니까 2020년 12월 22일에 일본에 왔다.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기숙사에서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지금은 첫 출근일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도쿄는 한국에 비하면 여름일 정도로 춥지 않다.
춥긴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말이다.
롱패딩을 가져왔지만, 롱패딩을 입을 만큼의 날씨는 결코 아니다.
몰랐던 사실인데, 일본에서 롱패딩 입은 사람은 죄다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롱패딩을 입기가 왠지 그래졌다.
그치만 추을 때는 당당히 롱패딩을 꺼내 입을 것이다.
내일이 첫 출근일인데, 사실 준비는 안 되어 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가 보면 알게 되겠지, 라는 생각.
기숙사에는 총 12명이 살고 있는데, 남자 6, 여자 6이다.
남자 2, 여자 1이 더 있었지만 자가격리를 마친 뒤 간사이로 넘어갔다.
남자들 중에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고, 여자를 포함해도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데, 일본어 실력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에 정착할 생각으로 일본에 온 것은 아니다.
최소 1년, 길어야 3년 일본에 있을 생각인데, 그동안 이놈의 바닥 일본어 실력을 좀 끌어올리고 싶을 뿐이다.
20대 중후반 동료들은 일본에 정착할 생각으로 온 것 같다.
이곳이 첫 직장인 친구도 있고, 오랜 백수 생활 끝에 이곳으로 온 친구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이 사활이 걸린 직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반면에 나는 조금 다르긴 하다.
이곳이 첫 직장도 아닐 뿐더러, 돈도 계속 벌어 왔다.
최근엔 주식 덕분에 자산이 2배 불어나 굉장히 충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본에 온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경험을 위해서 왔을 뿐이다.
사실 노동으로 큰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는다.
돈은 주식 투자를 해서 벌고, 삶은 노동이 아닌 경험을 위해 살 뿐.
일하러 일본에 왔다기보다는 경험을 하기 위해 온 것.
적어도 1년은 회사에서 집을 제공해주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아 1년간은 집값이 비싼 도쿄에서 마음껏 생활할 수 있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땐?
사실 대책은 없다.
이 나이에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그럼 원래 하던 일을 해야 할 텐데, 과연 그때도 일이 있을까.
번역 일을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음, 그게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앞일은 모르니,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서점도 자주 들르고 책에 대한 관심, 세계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를 결코 허투루 써서는 안 되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몸 생각해서 음식도 가려야 하고 운동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술은 웬만해서는 입에 대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12시 전에는 잠이 든다.
1년 뒤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실패해도 좋다.
실패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된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지금은 기숙사 302호 2층 침대의 1층에서 노트북을 무릎에 펴놓고 타자를 치고 있다.
노트북 배터리를 24%가 남았고 문 밖에선 헤어드아리기 소리가 들려 온다.
누군가 머리를 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