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관람평 후기
- 영화 리뷰
- 2024. 5. 4.
뒤늦은 일본 개봉과 극히 적은 상영관 수
왜지? 일본 감독의 일본 영화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먼저 개봉했다. 한국 개봉일은 2024년 3월 3월 27일. 일본 개봉일은 4월 26일. 빨리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봤다. 영화가 제작된 건 2023년이다.
의아한 건 <드라이브 마이 카>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일본 영화계에서 거장으로 등극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임에도 도쿄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2곳밖에 없다. 왜지? 늦은 상영일과 적은 상영관에 왜지? 라는 의문을 품게 하지만, 본작인 영화 역시 왜지? 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나는 일본에 살고 있어, 연휴인 골드위크를 맞이해 영화를 보러 갔다. 시부야에 위치한 분카무라 르 시네마에서 감상했다. 오전 10시 30분 상영이었는데, 연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근데 역시나 젊은 사람들은 극히 적었고, 40대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자들이 극히 적었다.
일본에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그저 영화를 아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인가? 솔직히 내 주위에 일본 지인들 중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을 본 이들은 거의 없다. 내가 추천해 줘서 <드라이브 마이 카>를 봤던 지인 한 명뿐.
내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본 이유
일본에 살면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모든 작품을 극장에서 감상했다. 그래봤자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정도이다. 이 두 작품이 너무 좋아 <아사코>도 찾아서 봤다. 게다가 그가 각본을 맡은 <스파이의 아내>까지. 아직 <해피 아워>는 안 봤다.
나는 그의 작품 중 특히 <우연과 상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팬이 되었고 이번 작품 역시 개봉하길 고대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본에서 왜 이렇게 늦게 개봉한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너무나도 적은 상영관 수. 근데 이게 오히려 영화를 보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보다 늦게 개봉해서 안달이 났었고, 상영관 수가 적어서 차일피일 보기를 미루면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을 내 시부야까지 간 것이다.
어쨌든 영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감독의 이름에 끌려 본 것이다.
좋았던 점
상영시간이 짧다
좋았던 점을 말하자면 일단 이번 영화는 짧다라는 것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 상영 시간은 3시간이다. 어휴. 이거 좀 보기 힘들었다. <우연과 상상>은 그나마 2시간.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100분! 일단 물리적 시간은 짧아서 좋았다. 근데 그의 실험적이고 테크니컬한 촬영 기법으로 영화는 거의 2시간처럼 느껴졌다.
특유의 빼놓을 수 없는 대화씬
<우연과 상상>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언어의 마술사다. 그의 작품에는 꼭 시덥잖은 대화씬들, 영화의 전개와는 전혀 상관없을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근데 그 대화들이 너무나도 재미있다. 대놓고 코미디가 아닌데 그냥 웃기다. 몰라도 될 이야기들인데 알면 좋다.
단지 시덥잖은 대사만으로 영화를 이렇게까지 이끌어 갈 수 있다니, 이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만의 전매특허 기술이다. 이게 빠지면 섭섭하다. 이번 작품에서 역시 시답잖은 대화씬이 등장하는데, 하이라이트는 글램핑장을 건설하려는 연예기획사의 직원 2명이 차를 타고 가면서 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전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데, 이게 왜 이렇게 몰입이 되는지 모르겠다. 안물안궁금인데, 너무 재미있다.
생각해 보니 영화 전개가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마을의 환경을 파괴하려는 이 악당의 졸개 2명은 차를 타고 가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속내를 드러낸다. 글램핑장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냥 회사 그만두자. 이쪽 업계는 다 쓰레기들뿐이다. 등등. 이런 대화를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 처음엔 마을의 평화를 뒤흔드려는 악의 무리로 느껴졌는데, 아 결국 이들도 그냥 우리들 중 한 사람이었구나.
특히 운전중인 남자 직원이 한참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여자 직원한테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서 담배 피우면 최악이지?"
"아니에요. 피우세요. 창문 열고."
"아니야. 도착하면 피울게."
이 남자 직원이 글램핑장 건설의 총대를 메고 진격하는 사람인데, 악의 선봉장이 아니었다. 배우로서 꿈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하고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를 하고 있는 남자. 인생의 회의를 느껴 다른 길을 생각하고 있는 남자. 그는 동석한 젊은 여성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폐가 되리라는 걸 알 정도로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남자인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사회를 맡은 주민 설명회에서 그는 주민의 이야기에 경청을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의 한계, 남자의 한계, 아니 그만이 아닌 보통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대사가 또 있다. 글램핑장 부지가 사슴이 다니는 길이라는 주인공 남자의 말에 이 남자 직원은 말한다.
"(글램핑장이 생기면) 사슴들은 어디로 가지?"
"어디로든 가겠지요."
보통 인간들은 인간에게는 다정하지만 존재감이 없는 약자들, 동물들에게는 한없이 무관심히다. 이 남자 역시 보통의 인간일 뿐. 사람에겐 친절하지만, 마을의 물과 마을의 사슴 같은 것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이 사슴들은 알아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말이 주인공 남자를 도발한다. 그래서 이 남자의 종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전문적이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꽤 봐온 나로서도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거의 다 초면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타쿠미를 연기한 오미카 히토시는 완전 초짜 배우이다. 원래 그는 스태프이다. 운전을 하는 스태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어쨌든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소리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이전 작품들은 보면 유명한 배우들이 다수 등장했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배우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서는 아마추어 같은 배우들을 기용했다. 날 것 그대로의 연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마을 주민 설명회에서 마을 주민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다. 이 연기가 지금 연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건지 모를 연기들이었다. 연기를 안 했는데, 아니 연기를 못 했는데 연기가 된 것 같은 연기.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런 걸 찍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극히 실험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배우들의 캐스팅에서도 그 실험적인 시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주인공인 타쿠미에게서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 연기를 못 해서인지, 아니면 감정이 필요없는 역할이었는지, 모르겠다만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연기, 딸에 대한 사랑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 연기가 오히려 좋았다.
안 좋았던 점
실험적이고 작가성이 강하다
다시 말하건대 이 영화는 극히 실험적이다. 실험적이고 테크니컬적이고 작가적이다. 이전 작품들에서 대중 상업 영화를 이렇게 잘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던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번 작품에서는 굉장히 인디적인 영화를 만들어 냈다. 대중성은 없고 작가성이 아주 강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감독은 무얼 말하고 싶은 건가요? 결말을 보면 다들 느끼겠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이해를 하려고 하면 이해를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납득은 안 되는 것이다. 정말 이거라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와 영화를 이렇게 시작한다고? 시작하자마자 관객을 재울 셈이야? 요즘 관객들은 이런 거 안 좋아한다고. 그치만 그는 그의 작가성을 끝까지 밀고 간다. 굳이 이렇게까지 롱테이크를? 왜 저기서 카메라를 찍지? 저건 왜? 왜?
뭔가 이번 작품은 감독이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라고 보여주는 영화 같다. 저는 남들과 달라요. 신카이 마코토가 <너의 이름은>으로 대박 히트를 친 후에 <날씨의 아이>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미 정점을 한번 찍으면 부담감이랄까 자만감이랄까 그로부터 태어나는 나는 다르다는 존재감.
지나치게 멋을 부렸다
이번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보겠다. 세계적 감독이 된 자신의 유일무이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힘이 많이 들어간 영화로 보겠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다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런 식의 영화를 계속 만들기는 어렵다. 왜냐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에 다음에도 이런 작품을 만들고 계속 이런 작품을 만든다면 그는 이런 감독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신카이 마코토에게 제2의 <초속 5cm>나 <너의 이름은>을 기대하고 있다. <날씨의 아이>나 <스즈메의 문단속>은 환승역이지 종착역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대단한 것 같다. 그는 언제나 그다. 이번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조금 멋을 부리고 싶어서 만든 영화라고 이해하고 싶다.
엔딩씬의 의미(스포 있음)
마지막 진짜 뭐지 싶었다? 이게 뭐야? 매일 친구들 없이 혼자 놀던 주인공 타쿠미의 딸 하나가 행방불명이 된다. 타쿠미와 연예 기획사 남자 직원이 하나를 발견한다. 하나는 총에 맞아 상처 입은 사슴과 마주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겨울 모자를 벗어 사슴에게 주려고 한다. 이 장면에서 사슴이 클로즈업되는데, 이 사슴이 묘하게 CG 같다. 갑자기 엄청난 이질감을 느꼈다. 저예산 영화라 그런가? 아니면 의도적인가? 여기서 혼란스러웠다. 뭔가 끊긴 듯한 느낌. 그러더니 타쿠미는 남자 직원의 목을 졸라 기절시킨다. 왜?
그리고 하나가 코피를 흘리면 쓰러져 있다. 타쿠미는 하나를 짊어지고 급하게 숲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 인트로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보여 준다. 그리고 들리는 건 타쿠미의 숨소리뿐.
여기서 관객의 해석은 갈린다. 오프닝씬과 엔딩씬에서 카메라는 하늘만 보여준다. 그리고 카메라는 움직인다. 누군가가 숲 속을 이동한다. 그 누군가는 분명 타쿠미이다. 엔딩씬과 오프닝씬이 같기 때문에, 엔딩씬에서 타쿠미였기 때문에 오프닝씬에서 역시 숲을 이동하는 이는 타쿠미이다. 근데 이건 인간 타쿠미라기보다는 사슴 타쿠미다.
타쿠미와 그의 딸 하나는 사슴이다. 타쿠미의 아내는 영화에서 죽거나 멀리 떠난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다. 만약에 아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갔다라고 본다면 타쿠미의 아내는 사슴 사냥꾼의 총에 맞아 떠난 것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라는 작품을 아는가. 인간의 과도한 도시 개발로 갈 곳을 잃은 너구리들이 인간으로 변신해 인간 사회 속에 숨어 살아간다. 타쿠미네 가족 역시 물이 좋은 이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근데 외지에서 이곳을 개발하려 든다. 타쿠미에겐 좋은 소식일리 없다.
그럼 여기서 타쿠미는 왜 남자 직원을 죽였을까. 영화에서 나오는데, 사슴은 평소에 사람을 공격하지 않지만, 궁지에 몰리면 사람을 공격한다. 총에 맞아 궁지에 몰린 사슴이 하나를 공격해 해를 입혔다. 이를 구하려던 남자 직원을 타쿠미는 저지한다. 왜? 사실 여기서 영화의 장면이 앞에서 말했듯이 뭔가 끊긴 듯한 느낌을 준다. 하나가 사슴에게 공격을 당해 쓰러지는 장면은 없다. 단지 총을 맞아 피를 흘리는 사슴이 보이고, 곧이어 쓰러져서 코피를 흘리는 하나가 보인다. 총에 맞은 사슴과 하나로 보이는 뒷모습이 같은 화면에 들어오지만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진다. 여기서 영화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가 사슴인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사슴임을 들켜 버린 타쿠미가 남자 직원을 죽인 걸까. 아내 역시 사냥꾼의 총에 맞아 잃었는데, 딸 역시 사냥꾼의 총에 맞아 잃게 된 타쿠미. 그는 쓰러진 딸 하나를 등에 업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타쿠미네 가족을 사슴으로 보면 퍼즐이 맞춰지는 부분들이 있다. 하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 놀았다. 왜? 사슴이니까. 타쿠미는 늘 깜빡깜빡한다. 왜? 사슴이니까. 타쿠미는 그 마을의 자연에 관한 건 뭐든 알고 있다. 왜? 사슴이니까. 타쿠미는 감정이 없다. 왜? 사슴이니까. 근데 퍼즐이 안 맞는 부분도 있다. 어렵다, 아니 모르겠다 이 영화.
결론
이 영화의 유일한 악은,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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