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영화냐. 이게 예술영화냐. 이게 예술이냐. 이런 영화 보면 예술이 뭔지 새삼 고민하게 된다. 이 영화가 예술이라면 예술은 그냥 넌센스다.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이고 다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감만 있으면 어린 아이도 그럴듯한 추상화는 그려 낼 수 있는 법. 의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이 감독을 맡은 영화라 기대하고 봤건만 지적 허영으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들어 냈을 줄이야. 저마다 각자가 잘하는 분야가 있는 법이다. 찰리 카우프만은 그냥 연출은 하지 말고 각본만 쓰는 거로.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 여자는 생각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만난 지 7주. 여자는 남자가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그냥 끝내고 싶다. 여자는 남자친구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삶에 대해 ..
“네 인생이잖아. 남 탓하지 마.” 아버지의 직장 탓에 도쿄에서 시골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 카사이(아다치 리카). 도시를 그리워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학교에서 적당한 포지션을 차지하며 편안히 생활하겠다는 각오로 첫 등교를 한다. 중학교를 도쿄에서 다녔다는 이유로 전학생 카사이를 안내하게 된 오다기리(에노사와 마나미). 사실 오다기리는 중학교 때 카사이와 어울리던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해 등교 거부를 하다 이름을 바꾸고 이 학교에 와 있던 것.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카사이에게 오다기리는 묻는다. “도쿄에서는 왕따가 흔해?” “내가 있던 데는 별로 없었지만 어딜 가든 그런 건 있지 않을까?” “그렇구나. 여긴 아주 평화로워.” 중학교 시절 따돌림 가해자와 피해자가 시골의 한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나다니!..
“이 결말은 당신의 연애관을 바꿀 것이다.” 영화 의 예고편 영상에 나오는 글귀다. 그럼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연애관이 달라졌을까? 정말 놀랍게도 그럴 리가. 연애를 해야 연애관이 있지, 연애도 못 하는데 바뀔 연애관이 어디 있나! 흥! 그래, 어쨌든 이 영화는 러브 스토리, 그러니까 로맨스 영화이고, 그것도 경악스러운 미스터리 로맨스 영화이다.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영화의 원작인 소설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의 결말을 본 순간, “세계가 180도로 확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며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길래 연애관을 바꾸고, 세계까지 움직인다는 걸까. 열다섯 살 연상의 남자와 동거 중인 토와코(아오이 유우)는 8년 전 헤어진 애인을 잊지 ..
리스본행 기차를 무작정 탄 중년의 남자는 이전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남자는 리스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어떤 젊은이들의 과거를 접한다. 남자는 말한다. "그들의 삶이 너무 특별해서, 그 동안의 내 삶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아." "그들의 삶은 충만했어. 근데 나는? Where is my life?" 그 젊은이들의 삶에서 자신의 무의미한 삶을 깨닫는 남자. 그럼에도 그는 리스본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무 의미 없이 살아왔던 그동안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 기차를 타려 한다. 리스본에서 만난 안과 의사가 역까지 배웅을 와 묻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 하는 건가요? 여기 있어요. 여기서 지내세요." 그리고 남자의 대답으로 영화는 끝난다. 남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