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연애관을 바꿀 영화 <이름없는 새>(彼女がその名を知らない鳥た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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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말은 당신의 연애관을 바꿀 것이다.”

 

영화 <이름없는 새>의 예고편 영상에 나오는 글귀다. 그럼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연애관이 달라졌을까? 정말 놀랍게도 그럴 리가. 연애를 해야 연애관이 있지, 연애도 못 하는데 바뀔 연애관이 어디 있나! 흥! 그래, 어쨌든 이 영화는 러브 스토리, 그러니까 로맨스 영화이고, 그것도 경악스러운 미스터리 로맨스 영화이다.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영화의 원작인 소설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의 결말을 본 순간, “세계가 180도로 확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며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길래 연애관을 바꾸고, 세계까지 움직인다는 걸까.

열다섯 살 연상의 남자와 동거 중인 토와코(아오이 유우)는 8년 전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한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동거남 진지(아베 사다오)는 토와코에게 이상하리만큼 강한 집착을 보인다. 토와코는 진지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불결하고 찌질한 그를 혐오하고 멸시한다. 그럼에도 ‘토와코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는 진지. 이 남자, 거의 병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토와코를 사랑한다.
    
원작을 읽고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토와코를 연기할 배우는 아오이 유우밖에 없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감독은 아오이 유우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못난 여자를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오이 유우는 이 작품으로 일본아카데미상을 비롯한 각종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여섯 차례나 거머쥐었다. 과감한 노출과 완벽에 가깝다고 평가받은 오사카 사투리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백화점 직원 미즈시마(마츠자카 토리)와 불륜에 빠진 토와코는 그와 새로운 삶을 꿈꾸는데 어느 날 집으로 형사가 찾아온다. 옛 애인 쿠로사키(다케노우치 유타카)가 5년 전에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충격적 소식에 이어 불륜남 미즈시마에게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토와코는 진지를 수상하게 바라본다.

 


토와코가 만나는 남자들을 보고 있자면 관객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동거남 진지는 툭하면 토와코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 뭐 하냐 꼬치꼬치 캐묻기 일쑤고 심지어 뒤를 밟으며 그녀의 사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한다. 불륜남 미즈시마는 달콤한 말로 토와코를 유혹한 뒤 그녀의 육체를 농락한다. 토와코는 단지 성욕을 푸는 인형일 뿐이다. 옛 애인 쿠로사키는 감독이 지금까지 “수많은 쓰레기를 찍어 왔지만 역대 최고의 쓰레기”라고 할 정도로 최악의 인간이다. 토와코를 자신의 출세 도구로 삼아 성상납을 강요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다.
    
이런 폭력적 남자들이 나오는 영화가 무슨 로맨스 영화냐, 범죄 영화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사실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영화로 높은 평가를 받아 온 감독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말을 보고 나면 어느 로맨스 영화 못지않게 눈물겹다.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뭐라 설명할 말이 없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우타마루는 “영화에서밖에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했다. 나는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 속 나의 사랑은 너무나 남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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