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짜 참 찰지게 잘 만든다 <우연과 상상>
- 영화 리뷰
- 2024. 1. 12.
"교수님, 이 부분을 쓸 때 발기하셨나요?"
"그랬을 수도."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감독이 궁금해져서 바로 그의 최신작인 <우연과 상상(偶然と想像)>을 영화관에 가서 봤었다.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이었다. 와, 이런 감독이 있었다니. 일본에서보다 세계적으로 더 유명한 감독인 것 같다.
<우연과 상상>은 단편 영화 세 편을 모아놓은 영화다. 영화는 대부분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무대극을 보는 것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배우들이 오로지 말로만 영화를 진행시킨다. 그래서인지 단편 소설을 읽듯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각 단편은 모두 내용이 다르지만 세 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우연과 상상'이다. 왠지 한 번쯤 일어날 법한 우연과 그 우연으로부터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볼 법한 이야기. 재미있다, 재밌어. 영화 참 찰지게 잘 만든다.
먼저 제1편 '마법'이다. 위 사진 속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여자1과 여자2는 같이 일을 하는 사이다. 여자1은 여자2와 함께 일이 끝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이런 얘기를 한다.
얼마 전에 어느 남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얘기가 너무 잘 통했어. 그래서 밤새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지 뭐야. 마치 마법에 걸린 듯했어. 하지만 그 남자랑 잠은 안 잤어. 왠지 잠을 자면 그 마법이 깨질 것 같아서. 그렇게 헤어졌지만, 사실 후회해. 그때 잤으면 어땠을까. 근데 그 남자는 2년 전에 정말 사랑했던 여자랑 헤어지고 아직도 그때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댔어. 그래도 난 그 남자를 또 만나고 싶어, 싶은데, 사실 두려워. 첫날이 너무 마법 같은 날이라 두 번째 만났을 때 실망하면 어쩌지. 그래도 만나고 싶어.
이 얘기를 하고 여자1은 택시에서 내리고 집에 간다. 이 얘기를 들은 여자2는 표정이 안 좋다. 여자1이 떠난 후 여자2는 택시 기사에게 말한다.
"기사님, 행선지를 바꿔도 될까요?"
여자2가 집으로 안 가고 갑자기 행선지를 바꾼 이유는 뭘까? 아! 그래, 그거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바로 그것. 위 사진을 보면 3자 대면을 하고 있지 않나? 후훗. 영화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
제2편인 <문은 열어둔 채로>다. 난 이게 가장 재미있었다. 이건 좀 코믹이고 음란하다. 위 사진 속 남자는 대학 교수인데, 소설을 써서 아쿠타가와문학상을 받는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이다. 근데 이 교수의 소설을 좋아하는 그의 학생인 위 사진 속 여자가 교수의 연구실을 찾는다. 여자가 교수를 찾은 이유는 교수를 유혹하기 위해서다.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그 교수를 유혹해서 타락시키기 위함이다.
여자는 교수의 연구실에 가서 항상 열려 있던 교수 연구실의 문을 닫는다. 하지만 교수는 말한다.
"문은 열어둔 채로 두세요."
교수는 항상 자신의 연구실 문을 열어둔 채로 둔다. 문을 닫지 않는다. 여자는 문을 열어둔 채로 오픈된 공간에서 교수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교수의 소설 속에서 음란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가장 좋았다면서 교수 앞에서 그 부분을 낭독한다. 그리고 교수에게 묻는다.
"교수님, 이 부분을 쓸 때 발기하셨나요?"
교수는 말한다.
"그랬을 수도."
여자는 낭독을 하면서 또 연구실 문을 닫는다. 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여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손을 뻗는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연다. 자, 교수는 과연 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갈 것인가? 이건 뒷부분에 정말 빵 터지는 부분이 있는데, 스포라 말 안 함.
제3편 <다시 한 번>이다. 이것도 정말 골 때리는 작품이다. 여자1은 도쿄에서 사는데 고향에서 고등학교 동창회가 있어서 도쿄를 떠나 고향인 센다이로 향한다. 여자1이 동창회에 가는 이유는 하나다. 옛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그 옛 친구는 고등학교 때 자신의 레즈비언 파트너였던 친구다. 하지만 보고 싶었던 그 친구는 동창회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에스컬레이터에서 서로를 발견한다.
- 어!? 어? 너?
- 어? 너?! 너? 너, 맞지?
- 정말 오랜만이다.
- 맞아, 이게 얼마 만이야!
- 왜 동창회에 안 왔어?
- 동창회? 그런 게 있었어? 왜 난 몰랐지?
- 그러게! 어쨌든 정말 오랜만이다. 보고 싶었어!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여자1은 우연히 만난 여자2의 집으로 향한다. 거기서 진짜 골 때리는 일이 벌어지는데. 역시 골 때리는 일이 뭔지는 스포라 말 안 한다. 근데 누구나 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상상할 수 있는 일을, 정말 재미있게, 우스꽝스럽게, 의미 있게 잘 써냈다. 영화를 정말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조만간 일본에서 4월 26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개봉 예정이다. 역시나 너무 기대된다.
한줄평: 일본어 공부해서 자막없이 보면 더 재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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