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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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세븐일레븐에 있는 공유 자전거 서비스 '헬로우 사이클링' 주차장

 

일본은 이번 수요일에 빨간 날이었다. 춘분날인가 뭔가 해서 쉬었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벼르고 벼르든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나는 코토부키에 사는데,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가장 가까운 영화관이 우에노 토호시네마즈에서는 하지 않고, 두 번째로 가까운 영화관 킨시초 토호시네마즈에서 했다. 그래서 킨시초까지 가야 하는데, 이게 교통편이 애매하다.

 

걸어가기에는 40분 정도로 멀고 지하철은 가까운데 환승을 해야 해서 번거롭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헬로우 사이클링'이라는 일본의 공유 자전거 서비스. 예전에 에노시마에 갔을 때 한번 이용했던 적이 있다. 두 번째 이용했는데, 아주 편리하다. 30분에 130엔인가 그렇다. 30분이 지나면 추가 요금이 붙는다.

 

집 앞 세븐일레븐 앞에 헬로우 사이클링 주차장이 있어서 앱으로 예약을 했다. 예약은 탑승 30분 전에 해야 된다. 예약하고 3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예약 취소가 된다. 영화 시간에 맞추어 앱으로 자전거를 예약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더니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전동 자전거라서 타는 재미도 있었다. 종종 이용해야겠다.

 

토호시네마즈 킨시초에서 감상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

 

내가 본 영화는 <퍼펙트 데이즈>라는 일본 영화이다. 빔 벤더스라는 유명한 감독이 일본에서 일본 배우들과 촬영한 작품으로, 야쿠쇼 코지가 주연이다. 개봉했을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시간이 나서 보게 되었다. 보고 나서 감상은 한마디로 보길 잘했다, 이다. 야, 이거 안 보고 지나갔으면 지금의 이 기분과 감정을 못 느꼈을 텐데, 그럼 인생 손해였다. 이러한 기분과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영화에 감사를 표한다.

 

이 영화가 한국에 개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봉한다면 꼭 보길 추천한다. 자신도 몰랐던 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킨시초에 있는 '헬로우 사이클링' 주차장

 

영화를 보고 다시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마침 <퍼펙트 데이즈>의 촬영장소가 내가 사는 곳 근처여서 자전거를 탄 김에 촬영지 순례를 했다. 스미다강 일대다. 스카이 트리와 스미다강의 사쿠라바시(벚꽃다리) 등등. 영화에 나왔던 곳 등을 가볍게 자전거를 타고 둘러봤다. 마침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무렵이라 벚꽃도 예쁘고 풍경도 좋았다. 아, 인생이다.

 

스미다강 사쿠라바시에서 바라본 풍경

 

낮에는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여자와의 약속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클럽활동으로 축구를 했던 R은 키가 172cm로 큰 여자다. 사실 작년 11월에 R과 연락처를 교환했는데 이제야 만났다. 내가 연락을 한다고 해놓고 이제야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리게 했는데 R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잘 지내냐며 내게 물었다. 별거 아닌데 참 고마웠다. 요즘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내가 농담으로, 나를 방어하기 위해 던진 말들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경험으로), 그래서 R의 반응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차가운데 너는 따뜻하구나.

 

그렇게 R과 만날 약속을 하고 드디어 만났다. 비가 조금 내렸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추운 날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사람 R을 만나면 따뜻해질 테니까 괜찮았다. 내가 예약을 한 가게는 샤브샤브 가게였다. 무한리필(타베호우다이)로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배 터질 때까지 먹어서 그날밤 체해서 다음날까지 꽤 고생했다.

 

R은 172cm의 큰 키에 비해 굉장히 온순하달까 조용했다. 원래 그런 성격인 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 지진에 났었던 이시카와현 출신이며, 도쿄 생활 5년차이며, 최근 이직을 했는데, 일은 재미없지만 월급이 괜찮다. 한 달에 4번 필라테스를 하고 쉬는 날에는 주로 술을 마시거나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리고 혼자 산다.

 

다음에 또 만나기로 했다. 다음엔 우에노에 있는 새마을식당에 가기로 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기로 했다. 라인 답장 늦게 하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편인데(얼마나 바쁘다고), R은 라인을 보내면 답장도 잘 한다.

 

아, 이날은 샤브샤브를 내가 샀다. 10000엔 가까이 돈이 나왔다. 다음은 R이 산다고 했다. 마음에 든다. 일본에서 나한테 밥 얻어 먹고 한 번도 사지 않은 여자들이 꽤 된다. 물론 내가 낸다고 해서 다 냈지만, 그럼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은가.

 

샤브샤브를 먹고 R과 스미다강을 산책했다. 산책로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당연히 그날은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그러니 없었지만, 우리는 그 밤, 바람을 뚫고 산책을 했다. 날만 좋으면 음료를 사서 스미다강에서 한잔할까도 했지만, 이건 뭐 다음으로.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일단 지금은 <퍼펙트 데이즈>의 주요 촬영지였던 사쿠라바시(벚꽃다리)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걸어가며 또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미다강에서는 매년 여름에 불꽃놀이를 하는데, 작년에는 R이 남자친구가 없어서 혼자 불꽃놀이를 봤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없다는 얘기를 굳이 꺼내 말하는 걸 보니 R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난 R이 내게 호감이 있음을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연락처를 물은 것이고. 남자의 왕자병이 발동하는데, 사귀자고 하면 사귈 것 같다.

 

뭐,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다. 나는 내 길을 가고 내 길을 따라오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좋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고 싶다. 그게 인간의 생에 주어진 큰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남성성은 가족을 꾸리고 가족을 지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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