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스럽다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 영화 리뷰
- 2020. 9. 19.
"세상엔 인간 말종들이 널렸단다."
"100명도 넘어요?"
"최소한 그 정도는 되겠지."
<나니아 연대기>를 쓴 작가 C. S. 루이스는 말했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는 확실히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를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는 바로 이 악마를 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심리 스릴러로 도널드 레이 플록의 동명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미스테리오 역으로 나왔던 제이크 질렌할이 제작에 참여했고, 이웃들의 친구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참고로 원래 크리스 에반스가 나오려고 했는데 일정이 안 맞아 하차했다고 한다. 촬영은 2019년 2월에 시작해 그해 4월에 마무리했다. 아니, 이렇게 빨리 찍을 수 있는 건가? 넷플릭스 영화들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들 수 있는 거지.
미국의 산간 도시를 배경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서민들의 삶을 종교와 폭력, 광기로 덧칠해 그려낸 이 작품은 한 번 봐서는 딱히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나의 사건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큰 이야기 속에 여러 인물이 서로 엮여 사건이 진행된다. 별개로 벌어진 사건들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하나의 점으로 모여지고 그 점은 마침표(.)로 끝나지 않고 줄임표(......)로 끝을 맺는다. 여운을 남겨 이게 뭔가 하고 계속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
내가 이 영화를 보며 이해가 안 갔던 것은 바로 종교를 향한 광기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라 그랬을까?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윌라드는 식당에서 첫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열심히 가정을 꾸리며 집도 사고 아이도 낳는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가 병에 걸리자 아들인 아빈(톰 홀랜드)이 사랑하던 개를 죽여 자신이 만든 제단에 제물로 바친다. 주여, 이 목숨을 줄 테니 아내의 목숨을 구해주시오. 그러고는 아빈에게 기도를 강요한다. 아빈은 사랑하는 개를 잃고 역시 사랑하는 엄마도 이내 잃는다. 윌러드는 아내가 떠나자 제단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왜? 신에 대한 배신감에서였을까? 자신에 대한 경멸감에서였을까? 윌러드 가족은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했는데, 윌러드는 아들에게 말한다. 세상에는 인간 말종들이 꼭 있는 법이라고. 그러고는 그 인간 말종들을 폭력으로 응징한다. 주를 따르는 자의 이 모순적인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어떤 미친 목사는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서는 하늘을 향해 외친다. 주여, 이제 제 아내를 부활시켜 주소서. 플리즈. 주여, 제발, 어서, 제 아내를 살려주소서. 당연히 주는 대답이 없다. 또 다른 미친 목사는 교회의 어린 여성 신자들을 설교라는 명목으로 꼬드겨 육체를 탐한다. 이에 아빈의 의붓동생이 임신을 하고 이 미친 목사의 야멸찬 태도에 자살을 한다. 그리고 아빈은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인간 말종 목사를 철저히 응징한다. 세계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악마를 물리치려는 자가 악마가 되고 그렇게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선 줄곧 악마들이 등장하는데, 그에 반대되는 존재로 그려지는 인물이 리노라다. 리노라는 앞에서 언급한 아빈의 의붓동생인데, 세상에 인간 말종들이 널렸음을 설파하는 아빈에게 리노라는 말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용서하라고. <죄와 벌>의 소냐와 같은 존재랄까. 성녀 캐릭터.
"그럼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나쁠 거 없잖아."
"기도는 네가 벌써 할 만큼 했잖아. 근데 너한테 득 된 거 있어?"
리노라는 자신의 아내를 부활시키고자 죽여 버린 미친 목사의 딸로, 그녀 인생의 결말은 자살이었다. 항상 성경책을 끼고 다니던 그녀는 결국 목사에게 치욕을 당해 자살에 이르는데, 용서하는 삶의 끝이 자살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리노라는 자살 직전에 목사를 용서한다. 아니, 스스로를 용서한다. 그리고 자살을 철회하려고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용서하는 리노라와 용서하지 못하는 아빈. 이 대립 구도에서 이 영화의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용서하는 자는 사라진다. 아빈은 악마들을 죽이고 스스로 악마가 되어 살아남았다.
기분 좋은 영화는 아니다. 잔혹하고 경악스럽고 더럽다. 전후 미국인들의 피폐한 정신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영화였고, 그 피폐한 정신을 위로해야 할 종교가 얼마나 추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끝으로 이 영화를 보고 든 의문은 '사람을 죽이는 게 종교인가?'라는 것. 최근 일련의 신천지나 뭐 그런 것들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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