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감상 후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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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봉 2023년 12월 22일

감독 빔 벤더스

출연 야쿠쇼 코지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부터 보려고 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라도 봤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걸 영화관에서 보지 않고 지났다면 참 아쉬웠을 것이다. 왜냐 영화관에서 보면 같이 감상하는 관객들의 반응을 얼핏 느낄 수 있는데,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에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영화를 보면서 하나둘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토호시네마즈 킨시초에서 감상했다.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삶이 자신들과 겹쳐져서였을까. 그건 모른다. 하지만 영화관의 중년의 남성들은 손으로 눈을 훔쳤고 코를 계속 훌쩍였다. 나 역시 울컥하는 순간이 있었고 눈물이 핑 도는 순간도 있었다.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에 있는 공공화장실을 청소하는 성실한 청소부이다. 어차피 더러워질 화장실을 매일같이 새것처럼 닦아낸다. 인생은 매일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라고 했던가. 히라야마는 매일 더러워지는 화장실을 매일 깨끗이 청소한다. 그는 무얼 그렇게 닦아내야 할 게 많길래 그렇게도 화장실을 닦아내는 것일까. 영화에서는 그의 과거가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의 그림자만 비치어질 뿐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과거를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지도 모른다. 과거에 얽매인 삶은 '퍼펙트 데이즈'가 될 수 없으므로.

 

히라야마의 하루하루는 매일매일이 같다. 창밖에서 길을 쓸어내는 빗자루 소리에 아침에 눈을 뜨고 이불을 개고 양치질을 하고 식물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고 자판기에서 같은 커피를 뽑고 차안에서 같은 테이프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직장인 화장실로 향한다. 일이 끝나면 같은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매일 같은 루틴의 하루이지만 그의 삶은 결코 매일이 같지 않다.

 

히라야마는 그의 삶을 말이 아닌 몸짓으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는 병인가 싶을 정도로 말수가 적다. 그는 말이 아닌 표정으로 말을 한다. 인생의 희노애락이 그의 표정으로 전해지는데, 이건 뭐 표정의 달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은 결국 삶 그 자체다. 신나는 노래를 슬프게 부를 수도 있는 것이고 슬픈 노래를 신나게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삶이다. 기쁨을 느껴봐야 슬픔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고 슬픔을 느껴봐야 기쁨에 감사할 수 있다.

 

스미다강 위 벚꽃다리. 영화 촬영지이다.

 

"아저씨, 여기로 쭉 가면 바다가 나와요?"

"응."

"그럼 지금 가 볼래요?"

"다음에."

"다음에 언제요?"

"다음에."

"다음이 언제예요?"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에서 과거의 지분은 적다. 영화는 오늘 하루인 지금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의 신선한 공기와 아침 햇살에 히라야마는 행복하다. 화장실 청소를 한다고 무시를 당해도 히라야마는 미소 짓는다. 젊은 여자의 볼 뽀뽀에 하루 종일 설레한다. 관심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있는 모습을 보고 평소 안 하던 술담배를 하며 절망한다. 그게 오해였음을 알고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게임을 하며 즐거워한다.

 

영화에 계속 나오던 스카이 트리

 

그의 표정에 따른 감정들을 추적해 가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아, 이 사람 진짜 지금을 살고 있구나.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다음 일을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지금이다. 별거 아닌 하루는 없다. 그 하루가 지금이라면 매일 같은 일을 하더라도 특별한 하루이다. 똑같은 하루일지라도 히라야마는 매일매일을 다른 삶을 살아낸다.

 

지금은 나의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이 정도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내가 히라야마의 나이가 되어서 보면 나 역시 코훌쩍이는 중년 아저씨들처럼 코를 훌쩍일지 모른다. 히라야마는 대체 왜 그렇게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내는 것일까.

 

히라야마가 매일 저녁을 먹던 지하상가 가게. 밤에 가서 문이 닫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마침 영화 촬영지 근처에 살고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촬영지 순례를 조금 했다. 날씨도 좋았고 벚꽃도 봤고 나름 '퍼펙트 데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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