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도구, 디자인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 책
- 2020. 9. 27.
디자인이란 뭘까?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를 보자. 스크린은 네모나다. 겉 색깔은 하얗다. 컴퓨터 모니터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새로 꺼낸 여름옷들은 왜 이렇게 각양각색일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의 표지는 왜 다 다를까? 이것들은 모두 디자인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각종 생활용품, 이를테면 수저, 밥그릇, 휴대폰, 그리고 매일 입는 옷, 심지어 음식까지 그 모양이 디자인되고 있다.
사물을 편히 이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예쁘게 바라보기 위해서 디자인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히 약간의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눈 호강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디자인은 자본의 축적을 위해 탄생했다. 쉽게 말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더 많은 물건을 더 많은 사람에게 팔아 이윤을 남기려고 디자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이며, 자본가의 목적은 자본의 증식이다. 디자인은 자본가의 자본 증식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디자인을 쉽사리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지 못하는 이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자인의 목적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이윤’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기계의 등장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다. 단지 기계의 등장으로 생산력이 향상하여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을까? 기계가 가져온 효율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제품을 사람들이 구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생산만 있고 소비가 없으면 자본주의는 돌아가지 않는다. 기계의 등장만으로 자본주의의 발달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기계의 등장으로 상품이 증가함과 동시에 그 상품을 소비하게 하는 무언가에 대한 설명이 따라붙어야 생산과 소비의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소비를 욕망케 한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사람들을 매혹하는 디자인이 기계의 능력을 빌려 대량 생산되고 팔려 나가야 자본주의는 움직인다. 끊임없이 생산만 되고 소비가 없다면 이른바 ‘대공황’에 빠지는 것이다. 디자인은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핵심적 도구인 셈이다.
디자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계급을 구체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자본가들은 디자인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야 하므로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를 파악한 뒤 이를 제품에 반영한다. 필연적으로 디자인은 그 사회의 욕망을 대변하고 표현한다.
귀족이나 부르주아가 입는 옷과 노동자, 하인이 입는 옷은 달랐다. 옷의 디자인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중상류층은 좋은 옷감의 옷을 입으면서 자신들의 우월함을 뽐내고 자랑했다. 반면 노동자나 하인 들은 신분에 맞는 수수한 옷을 입으며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고 자기 신분을 늘 자각하며 살았다. 옷 디자인이 사회의 신분 질서를 더욱 고착화한 것이다. 집과 가구의 디자인을 통해서도 사회 계급은 구분됐다.
자본은 디자인을 내세워 사람들을 유혹하고 소비를 욕망케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경제적 수준에 맞춰 소비를 한다. 소비 수준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고, 소비한 물건들로 계급의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이 더 무리해서 소비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쉼 없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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