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입문서 <영화 비평 - 이론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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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떤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영화를 사랑하는 나만의 이유를 밝히는 작업입니다.” 

 


지하철 가판대에서 매주 <씨네 21>을 사서 옆구리에 끼고 다닐 적이 있었다. 영화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영화에 관심 좀 가져보자는 마음에서였다. 그런 내 옆구리를 보고 당시 여자친구는 내가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한번은 우리 커플과 여자친구의 친구 커플, 이렇게 두 커플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일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말하길 자기 친구가 ‘오빠처럼’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아… 그래? 나처럼? 하하. 

우리는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에서 만났고, 처음 본 친구에게 여자친구는 나를 소개했다. 오빠도 ‘너처럼’ 영화 좋아해. 영화 잡지를 맨날 본다니까.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음을 느낄 수 있었고, 친구가 영화에 대해 뭘 물어 오면 어쩌나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고, 언제든 화장실로 달려갈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친구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는지, 초면부터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누구예요? 라는 무시무시한 질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휴. 

그때 본 영화가 <프란시스 하>라는 미국 영화였는데 흑백이었다는 거 말고는 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졸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처럼’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여자친구의 친구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진짜, 집에 가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처럼 옆구리에 영화 잡지를 끼고 다니지는 않지만 요즘 다시 영화에 관심 좀 가져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영화를 보면 배우들만 눈에 들어왔지 감독이 누구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제는 책을 볼 때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듯 영화를 볼 때도 감독을 먼저 본다. 책 보듯 영화를 읽으면 영화가 다르게 보인다.

아모르문디 영화 총서의 여섯 번째 책인 <영화 비평>은 자신을 “평단의 말석에 겨우 앉아 있는, 삼류비평가”라고 부르는 강성률이 쓴 “영화 비평에 대한 간략한 안내서”이다. 분량도 152쪽에다가 편한 말투로 쓰여서 나 같은 영화 문외한이 읽기에 적당하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저는 꽤 긴 시간 동안 현장 비평가로서 활동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때문에 이 책에서는 비평이란 무엇인지 고민했고, 비평을 하기 위해서 어떤 이론적 공부를 해야 하는지 설명했으며, 마지막으로 실제 비평에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비평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왜 써야 하는지 고민할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제 바람은 단지 그뿐입니다.”

 

영화 비평에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딱 맞는 책이 아닌가 싶다. 좋은 비평의 예시로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비평가들의 글이 실려 있어 그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 본인의 비평도 “민망함을 각오하고” 실려 있는데, 난 무엇보다 저자의 비평이 가장 좋았다. 어떤 비평들은 수사가 너무 화려해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쉽게 와 닿지 않았지만, 저자의 비평은 문장이 깔끔하고 메시지가 명료해서 영화에 대한 이해를 더 넓혀 주었다. 덧붙여 기성 비평가들이 이런 비평 입문서를 읽을지는 모르겠으나 저자는 나태한 비평가들에게 따끔하지만 애정 어린 충고를 날린다. 저자가 얼마나 영화를, 그리고 비평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이제부터 영화를 좋아하기로 했으니 외워 둬야겠다. 있잖아.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게 뭔 줄 알아? 뭔데?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계속 보는 거고, 두 번째는 계속 본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는 거고, 세 번째는 아예 영화를 만드는 거야. 우와, 멋진 말인데? 누가 한 말이야? 어? 그, 그건…. 잠깐 화장실 좀.

이 말을 한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세 번째 방법으로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이고, 두 번째 방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비평가들일 테고, 첫 번째 방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나처럼’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옛 여자친구의 친구 같은 사람일 것이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일부터 시작해서 아주 느리게 영화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 그러다 보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누구예요? 라는 질문을 받고 화장실로 내빼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테지.

 

"결국 어떤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영화를 사랑하는 나만의 이유를 밝히는 작업입니다. 나만의 고백을 밝히는 것이지요. (...)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므로 영화에 대한 '사랑 고백'입니다. 그것은 나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습관이자 영화를 대하는 나만의 태도입니다. 그런 방식이 확장된 형태가 바로 영화평론가들의 글쓰기이고, 그런 방식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영화평론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평론가는 영화를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이며, 왜, 어떻게 영화를 사랑하는지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영화평론에서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는 글은 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극한 애정이나 관심이 작품에 대한 분노로 나타날지라도 애정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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