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만 지겨워도 또 가족이다 <어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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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마다 영화를 한 편씩 보기로 하고 모처럼 본 영화가 이 영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일본어 제목은 '万引き家族'인데, 직역하자면 '절도 가족'쯤이 되겠다. 우리나라에 개봉하면서 '어느 가족'으로 타이틀이 번역되었는데, 꽤 괜찮은 번역이라는 생각이다. '어느'라는 말에서 '이런 가족'도 가족일 수 있구나 하는 영화의 문제의식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근데 영화를 보는 내내 살짝 좀 지루한 감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다. 사회적 또는 법적으로 가족이라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분명 그런 가족이 존재한다. 고로 부정할 순 없다. 다만 이게 과연 가족인가? 가족이다. 어떤 가족? 어느 가족이다.

 

할머니, 아빠, 엄마, 딸 둘에 아들 하나. 이렇게 6명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할머니의 통장에는 매달 꽤 짭짤한 금액의 연금이 들어온다. 죽은 남편 때문에 들어오는 연금이다. 그리고 이 남편이 살아있을 때 바람을 피워 다른 여자랑 결혼을 했는데, 그 바람피운 여자의 가족들에게서도 꽤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받고 있다. 사양 따위는 없다. 그 가족들을 찾아가면 돈을 주는 걸 알기에 전 남편을 위한다는 핑계로 가족들을 찾아가 뻔뻔하게 돈을 얻어낸다.

 

아빠는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그리고 이게 부업인지 본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 막내 여동생과 환상의 케미를 이루며 간헐적으로 절도를 일삼는다. 슈퍼에서 생필품을 훔치거나 고급 낚싯대 따위를 훔친다. 엄마는 무슨 옷을 수거해서 뭘 하는 공장에서 일하는데,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옷에 들어 있는 남의 물건을 종종 꿀꺽한다.

 

 

큰딸은 19금 업소에서 일을 한다. 큰딸이 유일하게 뭘 훔치지 않고 살아가는 1인인데, 내 마음을 훔쳤다. 그리고 아들은 아빠를 따라 물건을 훔치러 다니고,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인데 집에서 방치된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막내딸은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절도를 배워 간다.

 

근데 사실 이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코스프레 가족이다. 이건 뭐 스포가 아니다. 초반부에 다 나오는 사실이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이래도 가족일 수 있다는 건가, 아니면 가족일 수 없다는 건가. 아빠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아빠는 아들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아들은 절대 아빠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또 여동생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여동생에게 진짜 여동생이라고 말하지만 아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이 가족의 파탄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 아들 녀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된다. 코스프레는 결국 가짜라는 것이다. 진짜처럼 보일 순 있지만 진짜가 될 순 없다.

 

 

곧 한국은 추석이다. 평소엔 뭘 하고 사는지 전혀 모르다가 그래도 피를 나눴다고 명절이라고 전화 한 통 하면서 안부를 묻는 게 진짜 가족일까. 아니면 이 영화의 '어느' 가족처럼 피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남의 죄까지 뒤집어쓰며 항상 함께하는 것이 가족일까. 가족이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면 가족이 되는 걸까. 가족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요즈음이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거나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게 요즘 시대다. 가족이면 어떻고 가족이 아니면 어떻냐. 중요한 건 사랑이다. 사랑하면 가족일 수 있다. 그래, 깔끔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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